🌾 기토의 대지
“나는 늘 누군가를 키우고 있어”라는 말은 기토(土)가 품은 깊은 보살핌과 함께, 자기 삶이 뒤로 밀리는 아릿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 글은 기토가 자연스레 감당해 온 보살핌과 그 안에 숨은 희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흔들리는 정체성, 그리고 끝내 자기 삶을 돌보며 다시 푸른 들판을 가꾸는 방법을 세 장에 걸쳐 살펴봅니다.
1. 기토의 보살핌과 무의식적 희생
기토는 비옥한 흙처럼 타인을 품어 줍니다. 누군가 근심으로 메말라 있으면 먼저 다가가 물이 스미도록 땅을 고르고, 작은 씨앗이 떨군 꿈을 싹 틔우도록 햇살을 끌어다 줍니다. 도움을 청받기 전에 이미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고, 필요한 자원을 자신이 먼저 내어 놓습니다.
이런 세심한 보살핌은 기토에게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그러나 돌봄이 습관이 되면 희생도 동시에 습관이 됩니다. “나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인사가 되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모임에서 기토는 자리를 정리하고, 집에서는 가족의 식단을 챙기며, 직장에서는 동료의 업무까지 살핍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기토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필요에 따라 시간을 배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살뜰히 챙기는 기쁨이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 흙은 건조해집니다. 피곤함이 쌓여도 쉬어도 된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리지 못합니다. 책임감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모두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 이어지면 자기 필요를 표현하는 일이 미뤄집니다. 그렇게 기토의 보살핌 속에는 무의식적 희생이 차곡차곡 퇴적되며, 어느 순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도 눈동자에는 피로가 드러납니다. 이때 기토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구를 돌보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지치게 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2 . “나는 뭐지?”라는 기토의 정체성 위기
보살핌이 일상이 되면 기토에게는 감춰진 질문이 떠오릅니다. 바로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기꺼이 내었지만, 정작 자신의 성장 그래프는 멈춘 듯 보입니다. 하루를 끝내고 돌아보면 구체적인 성취보다 “잘 챙겨 주었다”는 막연한 피로만 남습니다.
칭찬은 들리지만, 그 칭찬이 소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덕분에 편했어요”라는 말이 감사하기보다는 “또 내가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압박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때 기토는 자신이 들판일 뿐 곡식이 아니라는 오해에 빠집니다. “나는 열매가 아닌 땅이니까”라는 체념이 깔리면, 꿈꾸고 도전하는 마음이 스러집니다.
그러나 들판이 있어야만 곡식이 자라듯, 들판 역시 스스로를 가꾸는 계절을 필요로 합니다. 정체성 위기의 핵심은 돌봄 그 자체가 아닙니다. 돌봄이 전부가 되어 버린 삶의 구조입니다. 기토는 타인의 필요가 아닌, 자기 내면에서 올라오는 요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합니까”, “내가 돌보는 사람에게 나를 돌봐 주길 원한다면 무엇을 부탁하고 싶습니까”처럼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답을 찾는 과정은 익숙한 역할을 잠시 내려놓는 불안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 불안은 기토가 자신을 들여다볼 유일무이한 통로가 됩니다.
3 . 기토가 자기 삶을 돌보는 법
기토가 다시 풍요로워지려면 가장 먼저 ‘양분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합니다.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타인을 위한 시간”과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구분하고, 후자에 딱 맞는 활동을 배치합니다. 작은 산책, 혼자 마시는 차, 기록하기, 새로운 공부 같은 일은 흙 속 양분을 다시 채워 줍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요청의 언어’를 익히는 일입니다. 도움을 받을 때 구체적으로 “오늘은 내가 준비한 것을 함께 나눠 주실래요?”라고 말합니다. 이 짧은 문장은 수년간 다져 온 역할 균형을 조금씩 수정합니다.
세 번째는 ‘관계의 비율’ 조절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관계와 상호 돌봄이 가능한 관계, 그리고 완전히 나를 쉬게 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3:3:4 정도로 배분해 봅니다. 처음에는 계산적이라 느껴져도, 이 구조가 안정되면 에너지 흐름이 고르게 유지됩니다.
네 번째는 ‘보살핌의 결과 기록’입니다. 내가 한 일이 남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눈으로 확인하면, 무의식적 희생이 아닌 의식적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들판에 무엇을 심을지’ 정하는 의식을 갖습니다. 새로운 취미나 장기 목표를 선택하고, 그 성장을 위해 작은 단계 목표를 작성합니다.
기토는 이미 돌보고 키우는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그 기술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때입니다. 들판이 스스로를 돌볼 때, 한 해의 곡식은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돌봄은 소진이 아닌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기토는 여전히 누군가를 키울 것이지만, 그 들판 한가운데 자신을 위한 따뜻한 쉼터도 함께 키워 나갈 것입니다.
💌 기토일간을 가진 모든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너는 늘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지만,
이제는 네 들판에도 너만의 씨앗을 심을 시간이야.
돌봄은 너의 전부가 아니라,
네가 가진 수많은 아름다움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이제는 너도, 스스로를 다정하게 돌봐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