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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간식(국제시장, 남포동, 씨앗호떡)

by 오늘도 반짝이는 나 2025. 5. 19.

부산 길거리에서 찾은 진짜 간식의 맛

– 국제시장, 남포동, 씨앗호떡의 이야기

 

부산을 걷다 보면 어딘가 익숙한 정취가 있다.
해안도시의 활기, 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공기, 그리고 도시 중심 골목마다 퍼져 있는 음식 냄새까지.
그 향은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기억을 불러오는 힘을 가진다.

국제시장과 남포동,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노점들은 단지 관광 코스가 아니라 부산 사람들의 손과 땀이 깃든 생활의 무대였다.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간식은 소박하지만, 한 끼 이상의 온기를 품고 있다.

 

부산 대표 먹거리
부산 대표 먹거리 - 한국관광공사 배포용사진 캡쳐

국제시장 – 전후 복구기, 손으로 다시 세운 간식의 골목

국제시장의 뿌리는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부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임시 거주지가 되었고, 국제시장 주변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생계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당시 사람들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골목마다 작은 좌판을 펼쳤다. 집에서 싸온 김치, 직접 삶은 달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용 물자까지, 팔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올려놓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 골목에서 팔던 음식은 단지 간식이 아니었다. 끼니를 잇고 생존을 도모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기름에 노릇하게 튀긴 찹쌀도너츠, 따끈한 팥죽 한 그릇, 멸치 육수에 어묵 두어 개 띄운 국수 한 그릇. 화려하진 않았지만, 적은 재료로도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실용적인 음식들이었다. 먹고 나면 몸이 데워지고, 마음도 조금은 놓이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 시절엔 포장 용기도 귀했다. 신문지를 돌돌 말아 튀김을 담고, 국수는 철제 그릇에 나눠줬으며, 다 먹고 나면 그릇을 다시 돌려주는 게 당연한 풍경이었다. 음식의 맛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온기와 나눔의 정서였다.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도구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유일한 위로였다.

 

세월이 흘러도 국제시장 골목 안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노점 주인들은 기름때 배인 철판 위에 튀김을 지지고, 큰 솥에 국수 육수를 푹 끓이며, 도너츠 반죽을 하나하나 손으로 빚는다. 그 손끝엔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세대를 잇는 삶의 리듬과 60년 넘게 이어진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국제시장은 단지 오래된 시장이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와 회복, 그리고 사람 냄새 나는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다.

남포동 – 부산 간식의 실험 무대

 국제시장과 맞닿아 있는 남포동 거리는 1980~90년대, 부산에서 가장 ‘핫’한 문화의 중심지였다. 당시 이곳은 극장가, 백화점, 대형서점, 레코드숍, 재즈바, 그리고 골목골목에 숨은 분식집들까지, 도시의 감성과 유행이 살아 숨 쉬던 곳이었다. 영화 한 편 보고, LP 한 장 사고,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 한 접시로 마무리하는 데이트 코스는 그 시절 남포동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이 문화적 분위기 덕분에 남포동은 단순한 상업지구를 넘어, 간식 문화의 실험실처럼 기능했다. 전통적인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거나, 유행을 반영한 퓨전 메뉴를 내놓는 가게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간식을 파는 사람들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늘 "이번엔 뭘 새롭게 만들어볼까?"를 고민하는 창작자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게 남포동역 7번 출구 근처 노점에서 파는 부산식 어묵이다. 서울에서 흔히 보는 두툼한 막대 어묵과는 달리, 부산식은 얇고 넓적하게 만든 어묵을 꼬치에 접듯이 꿰어 내고, 시원하고 깊은 멸치 국물에 담가 낸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라면 그 모양과 국물 맛에 의외로 놀라고, 한 입 먹은 뒤엔 특유의 담백함에 반하게 된다. 이 어묵은 그 자체로 부산 간식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요즘 가장 화제가 된 메뉴는 단연 돼지국밥 떡볶이다. 돼지국밥의 진한 육수에 떡볶이를 끓여낸 이 퓨전 메뉴는, 처음엔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지만, SNS를 통해 ‘한 입 먹으면 중독된다’는 반응이 퍼지며 빠르게 명물로 자리 잡았다. 구수한 국물과 매콤한 떡볶이의 조합이 묘하게 어울리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간식의 세계를 열었다.

 

또 하나, ‘남포동 핫도그’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름이 따로 없는 길거리 간식도 빼놓을 수 없다. 특정 가게 이름 없이도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이 핫도그는, 바삭하게 튀긴 튀김옷 안에 치즈가 가득 들어 있고, 위에는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한 입 베어 물면 ‘브런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맛이다. 어쩌면 부산만의 맛있는 여유를 간단하게 표현한 메뉴일지도 모른다.

 

남포동은 지금도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전통 어묵과 핫바가 손님을 맞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혀 새로운 조합의 간식이 손님들의 반응을 살핀다. 이 거리는 언제나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과감하게 실험하며, 결국은 사람들의 입맛을 정확히 찾아낸다. 그래서 남포동은 단순히 ‘예전의 추억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부산형 간식 문화의 최전선이다.

씨앗호떡 – 80년대 부산이 만들어낸 간식의 상징

부산을 대표하는 간식을 하나 꼽자면 단연 씨앗호떡이다.
이제는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원조의 맛과 이야기는 오직 부산 국제시장 골목에서만 진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씨앗호떡을 단순한 ‘관광용 먹거리’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전혀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0년대 중반,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사이 좁은 골목.
그곳에서 장사를 하던 한 아주머니는 기존의 평범한 호떡에 씨앗과 당밀 시럽을 넣은 새로운 버전을 내놓았다.

단순히 색다른 맛을 추구한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영양가 있게, 그리고 든든한 한 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호떡 속에 해바라기씨, 호두, 들깨, 해조류 분말, 그리고 진득한 당밀 시럽을 넣는다는 건 당시로서는 매우 낯선 조합이었다.


“호떡에 견과류라니, 너무 느끼하지 않을까?”
“당밀 시럽이면 단맛이 너무 강하지 않을까?”
손님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런데, 한 입 베어 문 순간 모든 우려가 사라졌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진 반죽이 입에 닿는 순간 바삭한 껍질이 먼저 터지고, 그 안에서 뜨끈한 시럽이 흘러나오며, 고소하게 씹히는 씨앗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그 맛은 달콤함, 바삭함, 고소함이 동시에 어우러진, 그야말로 작은 혁명이었다.

 

그 시절 부산은 여전히 고단한 노동의 도시였다.
부두에서 짐을 나르는 인부들, 철공소에서 일하는 기술자들, 시장통을 누비는 상인들. 하루하루 바쁘고 지친 그들에게 씨앗호떡은 잠깐의 휴식, 그리고 소박한 보상이 되었다.
뜨끈한 한 입이 주는 위로는, 한 끼 식사만큼의 만족을 안겨주었다.

 

세월이 흐르며 씨앗호떡은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고, 지금은 프랜차이즈도 생기고, 서울에있는 마트에서도 냉동 제품으로 팔린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시장 골목, 바로 그 원조 노점에서 먹는 씨앗호떡은 다르다.

 

노점 뒤편으로는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스치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엔 부산만의 정이 흐른다.
바삭한 호떡을 받아든 이들은 서로 “뜨거우니까 조심해~” 하며 웃고, 호떡을 나눠 먹으며 인증샷을 찍는다.

 

씨앗호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 안에는 부산의 역사, 사람들의 손맛, 그리고 삶의 온기가 녹아 있다.
그래서 한 입을 베어 물면, 단맛보다 먼저 마음이 따뜻해지는 간식!


그게 바로 부산 씨앗호떡이다.

부산 간식은 도시의 풍경 그 자체

부산에서 간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출출함을 달래는 일이 아닙니다.
국제시장에서 한입 베어 무는 찹쌀도너츠 안엔, 피란민들의 고단한 하루와 손때 묻은 삶의 흔적이 담겨 있고,
남포동 어묵의 깊은 국물 맛엔 바닷가 사람들의 푸근한 정이 배어 있습니다.


씨앗호떡 속 따끈한 당밀과 고소한 씨앗들에는, 80년대 부산 골목의 지혜롭고 다부진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이 간식들은 그저 먹는 음식이 아니라, 부산이란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손에 들고, 입 안에 담는 일입니다.


부산 거리를 걷다 문득 들른 노점에서 이 간식들을 맛보는 순간, 배보다 마음이 먼저 채워지는 그 감정.
그게 바로 부산 간식의 진짜 매력입니다.

그 안에는 '맛'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시간, 사람, 그리고 이 도시의 정서. 
그래서 부산 간식은 늘, 따뜻하게 기억됩니다.